기도는 정말로 응답되는가? 이 질문은 평생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에게조차도 때로는 흔들릴 수 있는 주제다.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문제는 반복된다. 가난, 질병, 인간관계, 무능감, 자존감의 바닥. 이 모든 것을 안고 우리는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반면, 어떤 사람은 거짓말처럼 응답을 받는다. 도대체 차이가 뭘까?
예수는 말한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만민이다. 특정한 사람만 응답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응답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응답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다.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하면서도 문제를 바라본다. 눈은 현실을 향해 있고, 입은 하나님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원망과 절망에 머물러 있다. 그건 기도가 아니라 불평이다.
하나님은 방향이 맞은 사람에게 응답하신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바라보는 사람,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응답은 시작된다. 말씀이 말씀으로 끝나면 안 된다. 말씀이 기도로 연결되어야 하고, 기도가 응답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이다.

사실 기도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막 11장 23절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강한 자는 다르다. 강한 자는 언약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다. 강한 자는 기다릴 줄 안다. 강한 자는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여호수아를 보라.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부터 너를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하겠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붙잡고 그대로 행동했다. 그랬더니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다.
기도의 응답은 결국 그 사람의 강함에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강함은 육체의 힘이 아니다. 말씀을 믿는 강한 믿음, 기도의 끈기를 놓지 않는 정신력, 끝까지 언약을 붙잡는 집중력. 이것이 강한 자의 특징이다. 반대로 약한 자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도하고도 금세 잊어버리고,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또 다른 장면에서 이런 자들에게 경고한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예수는 저주하신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이것은 단순한 나무 이야기가 아니다. 기도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자, 말씀이 임했는데도 삶에 열매 하나 없는 자, 그 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기도는 응답이라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당신의 삶에 사랑의 열매, 용서의 열매, 복음의 열매, 제자의 열매가 없다면, 당신은 지금 기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응답은 선택받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종교적인 문장으로 듣고, 어떤 사람은 생명을 거는 언약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응답의 차이를 만든다. 기도란 결국,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지금 기도하고 있는 그 자리가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방향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더 멀리 갈 필요도, 더 많은 걸 준비할 필요도 없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는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응답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 된다. 그 고백이 쌓이고, 그 고백이 일상이 되면, 어느 순간 당신의 삶은 바뀌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 약한 자가 강한 방향을 선택할 때 사용하신다. 응답은 강한 자의 특권이 아니다. 응답은 하나님께 방향을 맞춘 자의 현실이다. 기도는 그 방향을 매일 조율하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 훈련을 제대로 받은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하루, 당신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다. 방향이다. 기도를 해도 안 되는 이유는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만, 단 하나의 방향조차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답을 바란다면 먼저 결단하라. 나는 오늘부터 언약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겠다고. 나는 오늘부터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받을 것을 선포하겠다고.
그리고 중요한 진실 하나. 용서와 사랑이 없는 기도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예수는 말한다. “기도할 때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먼저 용서하라.” 이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용서는 응답의 시작이다. 나도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내 기도가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이건 과장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최고의 것을 주기를 원하신다. 최고의 응답, 최상의 인도, 최대의 열매. 하지만 그 전제는 당신이 말씀의 흐름 속에 들어올 때 가능하다. 기도를 버리지 마라. 기도를 끊지 마라.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혼자 있을 때에도 멈추지 마라. 계속 기도하라. 그리고 선포하라. “나는 지금 응답의 제자가 되고 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라. 그리고 그 응답이 결국 당신을 강한 자로 만든다. 이젠 기도를 선택할 시간이 아니라, 당신이 응답을 누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