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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절기

by coven21 20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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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풍요롭고, 선택할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간다. 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내 인생은 이렇게 될 거야', '내 미래는 여기까지겠지'라며 자기 생각으로 인생의 선을 그어버린다. 마치 답이 정해진 문제처럼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적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포기한 사람에겐 가능성조차 없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인간이 아무리 종결지으려 해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언약은 따로 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사명’이다.

 

모세가 실패했다고 느꼈던 순간, 엘리야가 끝났다고 여겼던 그 순간이 사실은 ‘시작’이었다.

 

인간은 끝이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시작하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진짜 시작이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 우리는 단순히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며 지낸다. 하지만 그 뿌리는 훨씬 깊다.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이라는 세 절기의 완성이 바로 추수감사절이다. 유월절은 양의 피로 구원받은 날이고, 오순절은 광야에서 하늘의 양식을 받은 날이며, 수장절은 거두고 저장하는 날이다. 단순한 농사나 수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명, 우리의 후대까지 연결되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다.

 

출애굽 당시, 애굽의 고통과 초대교회의 핍박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시간표였다. 가장 중요한 시간, 가장 깊은 응답이 쏟아지는 타이밍이었다. 사람은 고통 앞에 무너진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반드시 먼저 받아야 할 축복이 있다. 바로 복음이다. "모세야, 피 제사 드리러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복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피의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사단의 권세가 꺾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 이루었다’는 그 한 마디로 끝난 것이다.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처럼, 복음을 붙잡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환경이, 말이, 사람들의 평가가 그를 좌우하지 못한다. 반석 위에 세워진 인생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다. 복음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시간표 그 자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놓치고 산다. 그래서 삶 전체가 흔들린다. 진짜 복음을 붙잡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놓치게 된다.

 

기도는 무엇인가?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보좌의 망대를 세우는 일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를 내 삶에 끌어오는 것이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응답을 받지 못한 게 아니다. 성막, 언약궤, 세 절기 등 어마어마한 응답을 받았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록펠러처럼 전심으로 기도한다. 응답 이전에 내 안에 망대가 세워지는 것이 가장 큰 응답이다. 하나님의 세계가 나의 내면에 들어오는 것이다.

 

 

‘낙심’은 선택이다. 계시록 8장에 보면 우리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금대접에 담긴다고 한다. 사라지지 않는다. 반드시 응답된다. 그 순간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보좌의 여정’이다. 학업이, 사업이, 가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 수준의 응답이 시작된다. 이것이 진짜 응답이다.

 

 

추수감사절은 단순한 ‘감사’가 아니다. 유월절의 구원, 오순절의 능력, 수장절의 축복이 집대성된 날이다. 그리고 이것이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 복음을 깨닫는 순간 해방이다. 언약을 붙잡는 순간, 운명이 뒤집어진다.

 

애굽의 재앙은 이스라엘에게는 기적이었고, 하나님에게는 축복이었다. 전도자의 눈으로 보면 지금의 문제는 재앙이 아니다.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운명이 바뀐다. 질병, 무능, 가난… 다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전도자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사람은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축복은 나 혼자만 누리는 게 아니다. 반드시 자녀들과 함께 누려야 한다. 출애굽기 23장, 신명기 6장에서는 세 절기를 반드시 후대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전통의 전달이 아니다. 믿음의 각인이다. 어릴 때 각인된 것은 평생을 간다. 지금 이 언약을 붙잡는 후대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반드시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세 절기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다는 점이다. 갈보리산, 감람산, 마가다락방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은 ‘날마다’ 누리는 것이다. 추수감사절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누려야 할 언약이다. 당신의 삶에 이 언약이 임하는 순간, 더 이상 실패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요게벳처럼, 우리 역시 절대 불가능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후대를 왕궁으로 보내는 마음으로, 지금 나의 삶과 사명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세 절기, 보좌의 배경, 수장절의 능력은 단지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세우는 하나님의 시스템이다.

 

앞으로 우리는 '남은 자'가 아니라 '남길 자'로, ‘흩어진 자’가 아니라 ‘파송된 자’로, ‘빛을 발하는 자’로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의 축복이 지금 이 순간도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미 승리는 시작된 것이다. 모든 영적 문제가 응답으로 바뀌고, 당신과 연결된 모든 현장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날 것이다.


기도문

하나님, 이미 끝났다고 여긴 내 인생에 오늘도 새 언약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그동안 포기한 줄 알았지만, 주님은 지금도 나를 부르고 계심을 믿습니다. 고난 속에서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 속에서 보좌의 능력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의 시선을 문제에 두지 않고 언약에 고정하게 하시며, 나의 자녀들과 후대들에게도 이 언약을 깊이 각인시키게 하옵소서. 유월절의 구원, 오순절의 능력, 수장절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며, 보좌의 배경을 가진 전도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믿으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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