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율법으로 살면 결국 저주 가운데 빠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주장이나 겁주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진리다. 율법은 철저히 완전함을 요구한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을 행하라, 저것을 지켜라"는 조항 아래 놓인 인간은 스스로의 의로는 결코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고 절망하게 만든다. 그런데, 성경은 이 율법의 역할을 '초등교사'라고 표현한다. 초등교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인생의 근본 원리를 알도록, 더 큰 진리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안내자와 같은 존재다. 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다. 인간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 율법의 요구를 예수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셨다. 그의 의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았고, 그의 피로 우리는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 예수가 말하는 예수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기도하면서 그 예수를 바라봐야 하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봐야 한다.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그래야 복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복음을 듣고 깨달을 줄 아는 참 제자가 될 수 있다.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가고, 설교 한 편 듣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이 떠지는 일이다. 광명한 새벽별의 길을 따라가는 일이다. 그 길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길이고, 소경의 눈이 열리는 역사다. 그 길 끝에는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삶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르게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눅 18:17) 여기서 '어린아이와 같이'란 말은 단순히 순진하거나 순종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기는 존재라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전적으로 부모를 신뢰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생각, 내 수준, 내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과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의 성취를 믿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늘과 땅, 바다도 사라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이전의 모든 기준과 세계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오는 것이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내 생각, 내 자존심, 내 욕심, 내 기억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는 시간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 언약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우리는 응답을 확인하게 된다. 내 기준에서 응답을 확인하려 하면 끝없는 불만과 의심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말씀의 기준에서, 믿음의 눈으로 응답을 확인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게 된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일이 깨달아진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그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기도 후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는 예수가 말하는 예수를 따라가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종교적인 예수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고 예수 자신이 밝히신 그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진실하게 따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순종은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다. 하나님의 말씀, 그 언약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순종이다. 그리고 이 순종의 길에 놀라운 축복이 예비되어 있다.
성경은 말한다. "무릇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시니라." (눅 18:27) 인간의 한계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가정도 회복되고, 가문도 변화되고, 일터와 교회도 새롭게 된다. 하나님은 재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보라, 새 것이 되었다. (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불쌍한 내 실상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복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유일성과 재창조의 은혜로 영광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한 기도의 제목을 다시 붙든다.
-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보게 하소서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를 따르게 하소서
- 예수가 말씀하시는 예수를 삶 속에서 경험하게 하소서
- 새로운 실상, 새로운 피조물 된 축복을 날마다 누리게 하소서
기도가 곧 영적 호흡이다.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그 양식을 내 안에서 소화하고 생명력으로 바꾸는 일이다. 하루하루 기도하면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복음이 필요한 존재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인생의 참된 해답이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이 순간 잠깐 멈추고 기도해보라. “주님,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보게 하소서. 예수가 말씀하신 그 길을 따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