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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으로 이어지는 갑절의 응답

by coven21 202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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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으로 이어지는 갑절의 응답

요단강가에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의 생도 오십 명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구경꾼이었을 뿐입니다. 진짜 역사는 바로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생도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가니라"

 

물이 갈라지는 그 순간,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십자가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언약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피의 언약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계시하시고, 참 제사장으로서 단번에 드려진 완전한 제사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참 왕으로서 사탄과 세상과 죄의 권세를 완전히 파하신 그리스도의 언약. 바로 이것이 두 사람의 하나됨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두 사람이 함께 응답을 받는 은혜, 하나되는 친구, 하나되는 제자가 공동체를 이룰 때 갑절의 응답으로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참된 인간관계는 제자의 관계입니다. 예수와 내가 두 사람, 스승과 제자가 두 사람입니다.

 

성경을 펼쳐보면 이런 아름다운 관계들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아담에게 생기를 공급하는 돕는 배필 하와가 있었고, 바울을 도와 선교의 여정을 함께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의 어머니처럼 영적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관계는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한 관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관계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계시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이고, 참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며, 참 왕으로서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아가서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함께 가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까? 제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요, 주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사랑의 언약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드디어 그 순간이 왔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사의 간구는 단순했지만 확실했습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이 내게 있게 하소서.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받겠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는 것, 떠나가시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똑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둘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것이 바로 피의 언약으로 보장된 기도의 특권입니다.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이 우리의 합심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도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으로 제자로 이어지는 인간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피의 언약을 깨닫지 못하고 그 안에서 돕는 자로 강하게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것은 상향의 기름이 머리에 내림 같이 시온 산의 이슬이 헤르몬 산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시나니 곧 영생이로다"

명령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언약이 명령이고 명령이 언약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언약의 완성이 우리에게 명령으로 임하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직전 약속을 기억해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받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언약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의 언약으로 보장된 축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언약으로 맺어진 영적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가 된 새 언약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떨어진 겉옷, 부스러기 은혜만 받아도 됩니다. 마가복음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개들도 상 아래서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 여인도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피의 언약 안에서 딸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바로 그 언약이 우리의 만남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은혜를, 부스러기 은혜라도 사모해야 합니다.

겉옷을 가진 직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 되신 그리스도의 언약이 우리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십자가의 피의 언약으로 갑절의 응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피의 언약으로 두 사람의 인간관계가 제자로 이어지는 인간관계가 되어서 갑절의 응답이 있는 행복이 있게 하옵소서"

제자의 삶을 통해 이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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