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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힘의 회복

by coven21 202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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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가장 힘을 얻는가? 하루가 시작되기 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그 정적의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예배’의 시간이다. 예배는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회복의 루틴이 된다. 내면의 혼란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고, 무엇보다 진짜 힘을 회복하는 시간.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지속할 수 없다. 에너지가 바닥나기 전에, 감정이 무너지고, 결정이 흔들리고, 결국 관계까지 붕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너진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눈은 떴지만 정신은 흐릿하고, 몸은 움직이지만 방향이 없다. 예배는 이 흐릿함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 오늘의 흐름을 그분께 맡기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하루가 달라지고, 결국 인생이 달라진다.

 

예배의 본질은 ‘근원적인힘의 회복’이다. 이 힘은 단순한 멘탈적인 차원이 아니다. 영적이다. 기도는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고, 뇌파의 패턴을 바꾸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춘다. 하버드대학교 의대의 허버트 벤슨 박사는 “기도는 신체를 생리적으로 안정시키고, 깊은 집중 상태를 통해 치유를 촉진시킨다”고 했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도 예배는 진짜 ‘치유의 시간’이다.

 

사실 이 말은 너무 뻔해 보여서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항상 뻔한 진실 속에 숨어 있다. 매일 아침, 당신은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갈림길에 선다. 예배는 그 갈림길에서 가장 선명한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그리고 그 나침반이 향하는 곳은 하나다. '근원적 힘'. 외부 자극이 아니라, 안에서 끌어올리는 힘. 돈, 사람, 결과에 의존하지 않는 힘이다.

 

나는 늘 기도한다. 아침 시간에 모든 것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몸도, 마음도, 관계도, 생각도. 이 시간에 정리가 안되면, 하루 종일 사람 눈치 보며 흔들리게 되어 있다. 후대에게 가르쳐야 할 첫 번째가 이거다. 이 힘 없이 세상에 나가면, 결국 세상의 틀에 끼워 맞춰져 버린다. 사단이 깔아놓은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단순히 ‘어렵다’고 말할 수 없다. 어두운 틀, 올무, 함정이 있다. 거대한 플랫폼이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하고, 가치관을 왜곡시키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게임, SNS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틀이다. 이 틀은 아주 정교하다. 처음엔 편리함과 재미로 접근하지만, 어느새 사람을 중독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 사로잡아 버린다.

 

당신이 이 틀을 모르고 산다는 건,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다 무너지면, 결국 기도도 하지 않게 되고, 말씀도 의미 없어진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주 예수여, 사단이 만들어놓은 함정과 틀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이것이 지금 렘넌트에게 가장 시급한 기도다.

 

렘넌트는  시대를 바꾸는 주역이다. 하지만 주역이 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근원적인 힘’. 이 힘 없이는 다 무너진다. 사회적 지능도, 학벌도, 스펙도 다 필요 없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사단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오직 말씀과 기도 속에서 얻은 힘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힘은 어디에 있든 작동한다. 환경을 초월하고, 상황을 넘어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생각한다. 낮 시간은 ‘확인’의 시간이다. 아침에 얻은 힘이 진짜였는지, 현장에서 검증되는 시간이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선택 하나에서 내가 아침에 어떤 기도를 했는지가 다 드러난다. 밤 시간은 300%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다. 식사도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인풋’의 시간이다. 그냥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 기도의 흐름 속에서 먹고, 듣고, 말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하루의 모든 시간에는 ‘누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도가 있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다. 늘 눈치보고 불안에 흔들리는 사람과,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에 뿌리내린 사람은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살아도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우리 가정과 가문, 자녀들, 개인에게 근원적인 힘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특히 자녀들이 이 힘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일은 모든 사람이 치유받는 시간이다. 이것을 우리 자녀들이 반드시 누려야 한다. 단순히 교회에 오는 게 아니라, 예배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기도 속에서 근원을 잡아야 한다. 복음과 기도의 힘이 무엇인지 반드시 전달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나의 사명이고, 시간표임을 믿는다.

 

이 힘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세상을 살리는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단지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영적 분위기를 바꾸는 ‘영적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자녀들이 바로 그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근원적인 힘을 얻는 축복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렘넌트를 살리는 건 단지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다. 언약 가진 자와 마음이 통하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말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기도에서 감각이 통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요셉이 했던 말을 야곱이 마음에 담았던 것처럼, 후대가 ‘느끼는’ 기도를 하게 하라. 보여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기도. 그게 언약의 사람이다.

 

요게벳은 어떤 심령으로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었을까? 이건 종교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생명을 거는 절박함이었다. 사단의 손에서 자식을 지켜내기 위해 하루종일 기도했을 것이다. 그냥 울고 떨었던 게 아니라, 정확한 언약을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그것이 렘넌트를 살리는 어머니의 기도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붙잡는 기도. 그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진짜 하나님의 참된 응답이 후대에게 전달되도록 나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지금은 평안한 시기가 아니다. 위기의 시대고, 어두운 시대고, 방향 잃은 시대다.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이드로는 위험을 알면서도 모세를 사위로 삼는다. 생명을 걸고 모세를 도운 것이다. 이건 단순한 가족관계가 아니다. 시대를 보는 눈이 있었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민감함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 눈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시대를 끌고 가시는지, 어디에 응답이 쏟아지고 있는지를 보는 눈.

 

그래서 기도한다. 5000종족 속에 복음이 빨리 들어가게 하옵소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서 복음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이건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내가 먼저 받을 응답이다. 기생 라합을 보라. 아무리 힘이 없어도, 정확한 언약을 잡았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려울수록 더 정확한 언약을 붙잡는 것이 답이다.

 

라합은 성문을 열 힘도, 사람을 구원할 지위도 없었다. 하지만 언약을 이해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길을 여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적인 조건보다 ‘언약’이 중요하다. 이것이 렘넌트에게 전해져야 한다. 단순히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진짜 예배를 통해 언약이 뿌리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짜 예배를 드려서 힘을 얻게 하옵소서. 응답이 오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분위기가 변하고, 태도가 바뀌고, 감정이 정돈된다. 그리고 결국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인’으로 서게 된다. 말이 필요 없다. 존재만으로 증거가 되는 사람. 이게 렘넌트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영적 치유, 근원적인 치유, 근원적인 힘을 얻고 망대를 세워 나가야 한다. 지금은 세워진 탑에 올라갈 시간이 아니다. 직접 땅을 파고 기초를 놓아야 한다. 오바댜는 100명의 렘넌트를 숨겨서 키웠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숨어서 준비된 자가 결국 세상을 살린다. 렘넌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달해주는 어른, 어머니가 되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은 다섯 시간표의 그리스도를 설명한다. 렘넌트에게는 이 다섯 가지를 분명하게 새겨줘야 한다. 첫째, 영원 전에 계셨던 그리스도. 둘째,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셋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넷째, 다시 오실 재림주로서의 그리스도. 다섯째, 영원한 심판주로 서게 될 그리스도.

이걸 모르면 결국 ‘종교생활’에 빠진다. 그리고 종교생활을 하면 반드시 재앙이 임한다.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붙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기도조차 못하는 렘넌트가 아니라, 적어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일마다, 예배마다 기도의 집중을 통해 힘을 얻고, 그힘으로 치유함을 받게 하옵소서. 단순히 형식적으로 손 모으고 눈 감는 게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기도를 통해 삶이 정리되고 방향이 서게 하소서. 기도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그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게 하옵소서. 이건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실제로 역사가 일어난다.

 

영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밖에 없다.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 나라에서 온다. 보좌의 배경을 아는 자는 불신자를 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삶을 지배하는 흑암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그래야 열매가 난다. 하나님 나라를 아는 순간, 삶의 방향이 바뀌고, 집중의 이유가 생긴다.

 

우리 자녀들이 단순히 똑똑하거나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300%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 300%, 학업 300%, 전도와 선교 300%. 기도는 24, 25, 영원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학업은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기준에서 움직이며, 전도는 바울이 남긴 3가지 캠프처럼 현장을 살리는 방식으로 흐르게 하옵소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건 단순히 좋은 결정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 가서 네피림을 막는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바울이 그랬다. 현장을 살피고, 복음의 빈 곳을 찾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가 받은 응답은 ‘흔들리지 않는 구조’였다. 그런 시스템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어려움에는 진짜 응답이 숨겨져 있다. 쉽게 풀리는 문제에 진짜 응답이 담기지 않는다. 행 1:3을 보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친 건, ‘각인’을 바꾸는 일이었다. 마가 다락방에서는 ‘뿌리’를 바꾸셨고, 회당에서는 ‘체질’을 바꾸셨다. 응답은 순간의 기적이 아니라, 구조의 전환에서 온다.

 

염려의 기도가 아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내 계획과 감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전하게 하소서. 그 도전은 내 힘이 아니다. 근원적인 힘에서 시작된다.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근원적인 치유를 하라. 현장을 살리고, 시대를 일으키고, 문화를 바꾸는 건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이 힘에 달려 있다.

예배는 결국 이 힘을 얻는 자리다. 단 한 번의 예배로 끝나지 않는다. 매일의 누적된 기도, 매일의 반복된 집중, 그게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그리고 그 인생이 한 시대를 바꾼다.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가 단순한 일과가 아니라, 렘넌트의 미래를 결정짓는 복음의 시스템이 되게 하소서.

 

하루 24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간시간마다 누리는 게 있어야 한다. 아침은 회복의 시간, 낮은 확인의 시간, 식사는 작품의 시간, 저녁은 묵상의 시간.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라, 흐름이 있는 하루. 응답이 있는 시간 구조. 이걸 렘넌트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다. 그냥 앉아서 듣고 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다. 이 시간에 진짜 힘을 얻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무엇을 덜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래서 오늘도 예배를 준비한다. 단단하게.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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