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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힘

by coven21 202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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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요즘 가장 무기력한 시간이 언제였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마음속 깊은 평안을 느껴봤는가? 맥추절 예배를 드리며 당신의 마음에 이런 질문들이 올라왔다면, 이는 단순한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근원적인 치유의 시작이다. 지금 당신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시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치유 역사 안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중요한 건 ‘이걸 믿는가’다. 믿는다면, 그때부터 실제 역사는 시작된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맥추절의 성취’라는 주제를 붙잡고 있다. 맥추절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 절기는, 단순히 곡식이 자라서 감사하는 날이 아니라 ‘영적인 첫 열매’, ‘성령의 첫 결실’을 의미한다. 맥추절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바로 오순절의 능력이 실제로 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 자리가 단순한 예배 자리가 아니라, 성령이 강림했던 그 마가다락방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오직 성령충만.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된다. 성령충만은 단순히 방언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다. 내 안에 모든 혼란과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힘, 나를 짓누르는 과거와 영적 상처에서 해방되는 힘, 심지어 약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근원적 건강함까지 포함한다. 성령이 임하면 치유는 일어난다. 단순히 육신의 회복을 넘어서 ‘나의 뿌리’를 치유하는 역사다.

 

 

"주 예수여, 나의 근원을 만져 주소서." 이 말이 간절히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다. 성경은 말한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시리라.” 근원적인 문제는 스스로 고칠 수 없다. 하지만 성령은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맥추절의 축복을 사모한다. 단순히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시스템에 연결되길 원하는 것이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정말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인가? 아니면 그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근원적인 ‘영적 상태’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뿌리를 보지 못하고 잎사귀만 자르려고 한다. 불면증이면 약을 먹고, 우울하면 심리 상담을 받는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로는 '진짜 회복'이 오지 않는다. 근원적인 치료가 없으면 언젠가 또다시 문제는 다른 얼굴로 다시 찾아온다.

 

바로 지금, 맥추절의 시간에 필요한 것은 ‘근원적 치유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말로만 위로하는 분이 아니다. 실제로 움직이신다. 성령은 이 시간 당신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있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그 문제, 그 고통, 그 질병, 그 영적 무력감까지. 성령은 말한다. "나는 너를 안다. 너를 치유하기 원한다. 너의 중심에 들어가서 모든 흑암을 꺾고 새 힘을 주고자 한다."

 

맥추절의 축복이란 단순히 물질의 풍성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 영적 상태의 근원이 회복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유월절에 구원을 받았다면, 오순절에는 힘을 받는다. 그냥 힘이 아니라 ‘창조적인 힘’이다. 그 어떤 세력도 이기지 못할, 보좌의 배경에서 나오는 초월적인 힘. 그 힘이 지금 당신에게 임할 수 있다. 조건은 단 하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힘은 단순한 추상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요셉을 보라. 아무도 도울 수 없는 노예로 갔으나, 그는 속지 않았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지만, 요셉은 그곳에서도 속지 않았다. 왜? 이미 그의 중심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 오직 그리스도, 오직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전 세계를 살리는 지도자로 세웠다. 바로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처럼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 힘이 바로 맥추절의 힘이다. 이 힘이 지금 이 시간, 당신에게 임하고 있는가? 당신이 느끼지 못해도 상관없다. 성령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속지 않는 것’이다. 사단은 당신의 현실을 이용해서 당신의 영혼을 흔든다. 사소한 문제, 반복되는 실패, 불안한 건강, 의미 없는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믿음을 흔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이걸 이기는 단 하나의 방법, 오직 성령이다.

 

 

모세는 이 힘을 몰랐다. 왕궁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 민족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보내셨다. 결국 호렙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불타는 음성을 들었다. 단 하나의 지팡이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당신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회복’하는 시간이 바로 맥추절이다.

사무엘의 말을 생각해보자. 성경은 말한다. “사무엘의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가 가진 영적 힘이 실제로 현실을 바꾼 것이다. 다윗은 어땠나? “이 날 이후로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 한 소년이 나라를 살리는 왕이 되기까지,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신’이 있었다. 결국 다윗은 외친다. “주여, 갑절의 영감을 내게 주소서.”

 

이 시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단 하나, 집중이다. 세상의 소음, 내면의 불안, 수많은 정보에서 벗어나 ‘오직’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택된 집중. 그게 바로 맥추절의 본질이다. 다른 것은 다 죽어도 괜찮다. 오직 살아야 할 것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살리신다. 이것이 ‘오직의 은혜’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누명을 쓰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다. 사람을 살리는 흐름, 복음의 오직 흐름은 언제나 세상의 반대편에서 시작됐다. 지금 이 시간,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 오해, 답답함조차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선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신다.

이게 바로 근본적인 힘이다. 창조적인 힘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중심’에 관심이 있다.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다면, 이미 준비는 끝났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신다. 성령이 일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가 생각나고, 장래 일이 보여지고, 그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지금 이 시간, 이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고 있음을 믿어라.

 

지금 이 시간, 당신의 인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목적지를 모른 채 바쁘게 움직이는 삶은, 결국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절기 안에서 ‘방향’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 그 방향이 바로 ‘보좌의 배경’이다. 보좌,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내 삶에 적용되는 그 은혜. 그것이 맥추절의 본질이다.

성경은 말한다.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리라." 이건 단순한 종교적 위로가 아니다. 실제로 삶을 뒤흔드는 구조적 변화다. 마가다락방에서 시작된 오순절의 성령충만은 단지 그들의 감정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 전체의 리듬, 관점, 선택, 우선순위를 바꿔버렸다.

지금 이 시간, 당신이 느끼고 있는 어떤 감정이 있다면—예를 들어 무기력, 불안, 의심, 혹은 조금의 기대감—그 모든 감정 뒤에는 당신의 영적 상태가 있다. 하나님은 감정을 터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근원을 터치하신다. 그 근원이 변화되면 감정은 저절로 정리된다. 그래서 우리는 ‘근원적인 힘’, ‘근원적인 치유’를 갈망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창조적인 힘’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안에서는 분명하게 체감된다. 예를 들어, 이전엔 하루 종일 눌려 있던 감정이 사라지고 가볍게 움직이게 되는 것,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던 내가 갑자기 여유가 생기는 것,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이런 변화들은 모두 ‘보좌의 배경’에서 오는 힘이다.

보디발이 요셉을 향해 “너는 노예가 아니구나”라고 말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요셉은 어디서도 노예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좌의 배경,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맡든지, 요셉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대에 '보디발 같은'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 ‘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유월절은 ‘해방’이다. 사단의 손에서, 죄의 사슬에서, 과거의 눌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은혜다. 오순절은 ‘능력’이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전환의 시기다. 맥추절은 ‘첫 결실’이다. 이제는 과거가 아닌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당신이 지금 이 세 가지 절기를 동시에 이해하고, 동시에 누리게 된다면 당신 인생의 ‘근본적 리듬’이 바뀌게 된다.

 

이 리듬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진다. 기도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24’, ‘운동 24’, ‘말씀 24’ 같은 시스템을 붙잡는다. 이건 단순한 루틴이 아니다. 마치 사람의 몸이 매일 음식을 먹고, 호흡하듯 영적인 사람은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무너진다. 아니, 무너진 줄도 모르고 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기도 24. 이건 하루 종일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루 중 언제든지 기도의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아침에 눈 뜨며 "주 예수여, 오늘도 근원적인 힘을 주소서." 출근길에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오직 복음을 보게 하옵소서." 작업 중에,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도, 갑자기 화가 날 때도, 항상 ‘속 기도’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기도 24’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운동 24. 영적인 사람이 왜 육신을 가꾸는가?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건강은 사역의 도구다. 몸이 지치면 영이 무너지고, 영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한 번은 몸을 움직인다. 산책이든, 스트레칭이든, 고강도 운동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내 몸을 하나님의 도구로 준비시키는 것이다.

말씀 24. 이것은 단순한 성경 읽기가 아니다. 말씀이 사고를 지배하는 상태다.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 구절이 단순히 암기된 문장이 아니라, 내 삶을 해석하는 렌즈가 되는 것이다. 돈을 잃어도,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도, 몸이 아파도, “그래도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고 있다”는 확신. 그것이 ‘말씀 24’의 정수다.

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으면, 당신은 맥추절의 진짜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의 강함을 원하신다. 남들이 모르는 깊은 곳에서, 조용히 근원을 키워나가는 사람. 그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은 ‘일상’으로 역사한다.

 

사도바울은 이런 사람이다.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역사하던 날, 바울의 중심이 완전히 흔들렸다. 유대인 중심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임했다는 사실. 이건 단순한 문화 충돌이 아니라, ‘시대 전환’이었다. 바울은 그 성령의 능력으로 네피림의 문화를 이기는 진짜 캠프를 시작했다. 시대 문제를 바꾸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신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조건은 단 하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당신은 지금 영적전쟁에 이기고 있는가? 아니면 지고 있는가? 그 기준은 단순하다. 오늘 하루를 ‘말씀, 기도, 복음’으로 해석했는가? 아니면 세상적인 감정, 욕심, 불안으로 해석했는가? 승패는 거기서 갈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지 말라”고 반복하신다.

마귀는 당신을 무너뜨릴 능력이 없다. 하지만 속일 수는 있다. “넌 안 돼”, “넌 문제야”, “넌 소망 없어”라는 거짓말을 속삭인다. 이걸 분별할 수 있는 힘,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눈. 그게 바로 맥추절에서 받는 축복이다.

이제 시작하자. 아침에는 깊은 기도에 들어가자. 단 10분이라도 말씀을 붙잡고 시작하자. “오늘은 맥추절이다. 오늘 나는 성령의 능력과 함께 한다.” 그렇게 선언하자. 그리고 하루 종일 말씀을 반복하자. 밤에는 하루를 정리하며 다시 묻자. “오늘 나는 오직을 붙잡았는가?” 이게 반복되면 인생이 바뀐다. 그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맥추절의 성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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