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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5, 영원

by coven21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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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우리 삶의 호흡이어야 한다고 들었지만, 막상 기도하려고 시간을 따로 내면 그 시간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도, 마음은 분주하고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기도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경험.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솔직한 현실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기도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조용한 장소에서만 드려야 하는 특별한 행위일까요? 혹시 하나님은 우리와 더 자주, 더 가볍고 일상적인 대화를 원하시지는 않을까요?

"어디서든지 가능한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바로 그 오해를 풀어내는 열쇠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할 때에도, 걸을 때에도, 지하철을 기다릴 때에도, 자녀를 돌볼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기도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짧은 말이라도 속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기도의 삶을 사셨지만, 늘 산속에만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 틈에서도, 길을 걷는 중에도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셨습니다.

기도가 내 삶의 리듬이 되게 해달라는 고백은 참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리듬은 반복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게 기도와 함께 흐르기를 원합니다. 특별한 순간만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주님,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안에 말씀해주세요'라고 속삭일 수 있다면, 기도는 더 이상 멀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숨 쉬듯 가까운 것이 됩니다.

주님, 기도가 내게 가장 편하고 행복한 일이 되게 하소서. 말로 다하지 않아도, 그저 마음으로라도 주님을 향하는 이 시간이 가장 큰 위로가 되게 하소서. 나의 삶이 기도 속에 숨 쉬게 하소서. 주님께 말을 거는 순간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주님이 함께 계심을 확신하게 하소서.

 

사사기 21:25은 말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것은 중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 기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결국은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기도가 사라진 삶은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영적 나침반입니다.

“왜 출애굽 이후에도 고난이 계속되었을까?” 하는 물음은, 구원이 곧 완성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유월절이 해방의 시작이었다면,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그 여정 속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기도가 결국 망대를 세우고, 여정을 인도하며, 이정표를 만듭니다.

미스바에서 사무엘이 부르짖었던 기도는 단순한 회개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이 바로 에벤에셀, 즉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기도는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인도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합니다. 기도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플랫폼이 세워지고, 파수망대처럼 시대를 바라보게 되며, 안테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받는 자리가 됩니다.

기도가 단절된 삶은 결국 우상을 따르고, 실패를 되풀이하는 길로 흐르게 됩니다. 솔로몬의 실수도, 이스라엘의 분열도 결국 기도가 약해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시대, 앗수르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기도로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왕하 6장에서처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축복은 바로 이 기도의 자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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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단지 응답을 얻기 위한 요청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만, 사실 기도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리듬에 맞춰 변화되는 길입니다. 낮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밤에는 내 삶의 깊은 곳까지 점검하며 300% 준비하는 삶, 이것이 바로 ‘기도 24’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는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중심에 누가 계시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망대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망대는 곧 여정이 되며, 우리의 발걸음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됩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분주하지 않고, 뿌리내린 영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with, Immanuel, oneness’의 시스템입니다. 늘 함께하시고, 늘 가까이 계신 하나님과의 동행이 일상이 되는 것.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면, 기도는 가장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 됩니다.

복음을 깨닫는 은혜가 이 기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복음은 단순히 죄사함이나 구원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고백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복음의 참된 가치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마치 보석 위에 먼지를 쌓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재앙이 무엇인지, 해방이 무엇인지, 참된 자유가 어떤 것인지, 유월절과 오순절과 수장절이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구속사 속의 중요한 이정표임을 알게 될 때, 우리의 기도는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현장 속 제자를 발견하고, 교회의 제자로 세워지고, 결국 한 나라를 살리는 제자로 부름받는 삶. 이것은 기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여정입니다. 단지 종교적인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가 지역을 변화시키고, 세대를 이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큰 그림 속에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기도는 더 이상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통로가 됩니다.

주님, 기도할 때마다 제 눈이 열리게 하소서. 단지 내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보이게 하소서.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가 영원을 품고 있다는 것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망대 위에 서게 하소서.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과 속삭일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이제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기도가 자연스러운 리듬이 되어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생명이 되어 일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작이 아니라 동행입니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의 끝없는 대화.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쉼과 방향을 얻게 됩니다.

 

주님, 기도가 내 삶의 호흡이 되게 하소서.
모든 순간에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제 삶에 하나님의 영원한 리듬이 흐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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