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 보면 나의 길이 어둡고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날은 방향조차 알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순간에 우리 발에 등이 되고, 길에 빛이 되어줍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렘넌트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의 축복과 삶의 방향을 깊이 있게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작품,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모든 일들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의 일부입니다. "나의 작품을 계속 편집하고, 설계, 디자인하는 것이 재미있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내 일상과 작업이 그저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의 여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쁘게, 열정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길 원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노예’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요셉처럼 300%의 태도를 가지고 임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참으로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갔고, 청소라는 가장 낮은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300%로 감당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성실함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인간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떤 일이든 최선이 아니라 절대성의 기준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요셉은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결국 보디발의 집을 책임지는 총무가 되었으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그곳에서도 300%로 행하여 장관을 변화시키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동일한 자세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주님, 우리도 요셉처럼 어떤 자리에서도 300%의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조각임을 믿게 하소서. 주어진 현실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일하게 하소서.

렘넌트들이 가야 할 현장은 237나라요, 5000종족입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적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땅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며, 렘넌트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밋타임’이 필요합니다. 서밋타임은 단순한 조용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보좌의 축복을 누리고, 영적인 재앙을 막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서밋의 자리에 올라설 때, 재앙과 흑암은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사탄은 스스로를 속이고, 또한 우리를 속이려 합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멸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눈앞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는 것이야말로 사단의 거짓을 꺾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자입니다. 영원 전부터 예비된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다시 오실 재림주 그리스도, 마지막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를 우리가 붙들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작은 하루,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원합니다. 나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곳에 주님의 빛이 비치게 하소서. 하나님, 다윗의 여유를 배우게 하시고, 조급하지 않게, 여유롭되 철저하게 준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과 바울의 사역을 묵상해 보면, 그 중심에는 동일한 흐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바울은 그의 모든 여정과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제자를 세우며, 고난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고백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말은 단순한 여행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되는 절정의 선언이었습니다.
로마는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고,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이 전파될 때, 진정한 세계복음화의 문이 열릴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로마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보좌의 역사 속에 자신을 완전히 던진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 나라의 일이 따라오는 법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언약을 붙잡을 때, 사탄의 흑암은 꺾이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선명해집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 앞에 서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지금 내 삶에서 어떤 응답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쩌면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셨고, 그 준비된 것이 우리를 통해 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됩니다. 일상에서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내 삶의 자리를 사명의 현장으로 삼을 때, 하나님 나라는 그 곳에 임합니다.

주님, 저도 바울처럼 로마를 향한 언약을 붙들게 하소서. 저의 삶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그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매일의 삶이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질지라도, 그 속에 주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믿게 하소서.
이제는 여유를 배우는 삶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여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느긋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철저히 준비된 자였습니다. 여유는 믿음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시선은 당장의 문제나 성공이 아니라, 영원의 축복을 향해야 합니다. 24, 25, 영원의 시간표 속에 나를 두며,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유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비록 작은 곳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현장이라면, 그곳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주님 다시 오실 날에 완성될 그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도 묵묵히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소서. 다윗처럼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게 하시고, 요셉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의 속임수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매일을 살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일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어떤 자리에서도 요셉처럼 300%의 자세로 살아가게 하시고,
바울처럼 로마를 향한 언약을 붙들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