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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일시대의 망대

by coven21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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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그 마지막 시간에도, 그분의 눈과 마음은 후대를 향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시대를 향한 절규였고, 후대를 향한 간절한 영적 외침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또한 이와 같습니다. 단지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 그것이 바로 중직자의 사명입니다.

 

산업인 중직자들은 교회의 기둥이며, 시대를 움직이는 렘넌트들의 배경입니다.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힘을 얻게 된다면,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아나며, 지역이 회복되고, 결국 시대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힘이 단순한 세상적 역량이나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배에서 오는 하늘의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금요일, 토요일, 주일—이 금토일 시대를 살아가는 산업인들은 단순한 신앙인이 아닌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날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적 흐름이 결정되고, 응답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중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금요일 밤에는 후대를 품고 기도하게 하시고, 토요일에는 렘넌트들과 함께 모여 포럼하게 하시며, 주일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흐름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삶의 현장에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모이면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포럼하게 하시고, 밤이 새도록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나누며, 중직자 각자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서로 확인하게 하옵소서. 그럴 때 근원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너져가던 내면의 질서가 회복되며, 가정과 후대가 살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여름방학에는 아이들이 잠시 학업을 내려놓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한 달 동안 기도하며 집중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주옵소서. 공부보다 중요한 힘, 그것은 기도에서 얻는 실제의 능력임을 알게 하시고, 교회를 살리고 목회자를 살리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시간표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토요일을 그냥 보내지 않게 하시고, 반드시 모여서 렘넌트를 살리는 시간 되게 하소서. 안 모이면 세계복음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흩어져 있는 다민족들이 모이려면, 반드시 우리가 먼저 모이게 하시고, 하나로 합하여 나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토요일은 세계치유의 날이요, 우리가 실제로 치유를 전달하는 날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이 날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복음 안에서 세상을 향해 치유의 통로가 되는 중직자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기도와 증거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가 살아나고, 중직자가 회복되며, 후대가 치유되는 날입니다. 그냥 예배가 아닌, 언약 따라 흐르는 예배 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한 방향 회복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세상 가운데 답을 전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 속에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날 받은 말씀과 응답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서 다시 포럼하고 나누는 흐름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의 보좌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보좌의 은혜, 보좌의 능력, 보좌에서 임하는 치유와 회복의 권세를 누리게 하시고, 그 능력으로 산업과 후대를 살리는 중직자 되게 하옵소서. 보좌의 망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근원적인 힘을 주는 실제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그 보좌의 여정을 걷게 하시고, 그 여정에서 후대를 위한 방향을 보게 하옵소서. 보좌의 이정표를 따라가며, 현장을 살리고 후대를 세우는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고린도전서 10장 4~5절에서 말하듯, “그들은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며,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주여,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 우리의 삶의 근원이시며, 모든 시대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이제 로마에서 온 나그네,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 근처의 리비아 등 온 세상에서 모인 자들이 성령의 역사 속에 말씀을 듣고 변화된 것처럼, 오늘도 흩어져 있던 모든 민족과 중직자들이 다시 복음으로 모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그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2장 10절의 역사가 지금 우리 가운데 재현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직자 한 사람의 결단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중직자의 기도는 교회를 움직이고, 중직자의 집중은 시대의 방향을 바꾸며, 중직자의 포럼은 후대를 살리는 영적인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말씀에 깊이 뿌리내린 산업인 중직자 한 사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계획을 이루는 전도운동의 핵심 주체이며, 하나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시대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시대에 우리가 응답받게 하옵소서. 우리가 어디서 무너졌는지를 알게 하시고,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를 정확히 보게 하옵소서. 여섯 군데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를 단순한 시스템이나 리더십의 문제로 돌리지 않게 하시고, 모임의 방향, 포럼의 내용, 기도의 깊이를 점검하게 하옵소서. 응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영적인 포럼 안에서 답을 얻게 하옵소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온 나그네였습니다. 이들이 그저 나그네로 살았다면 성경에 이름조차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을 만나고, 복음을 깨달은 이 부부는 이후로 자신의 집을 복음의 현장으로 헌신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로마 복음화의 가장 귀한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산업인 한 사람이 보좌의 언약을 붙잡을 때, 시대가 치유되고, 교회가 살고, 후대가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가 단순한 '나그네'가 되지 않게 하시고, 시대를 살리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보좌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일에 우리의 산업, 시간, 만남, 그리고 후대를 올려드릴 수 있는 중직자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마게도니아로 가야 할 시간입니다. 바울이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절대시간표였고, 그 만남은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었으며, 결국은 유럽 복음화의 문이 열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흐름 속에 있을 때, 반드시 시대의 문을 여는 만남, 현장의 응답, 렘넌트를 살리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그 자리를 향해 집중하게 하옵소서.

 

주님, 산업인 중직자들이 금요일 밤에 후대를 위해 울게 하시고, 토요일에 렘넌트와 함께 교회에서 모이게 하시며, 주일에는 말씀이 흐르고 증거가 확인되는 예배의 흐름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금토일의 모델이 되게 하시고, 시대가 본받을 중직자의 삶의 표본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데살로니가로 가야 합니다. 회당으로, 렘넌트에게로 나아가는 전도자의 발걸음처럼, 우리의 발걸음도 렘넌트를 향하게 하시고, 렘넌트를 세우는 포럼과 기도의 흐름이 계속되게 하옵소서. 단순한 교회 사역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언약적 흐름이 되게 하옵소서. 렘넌트를 세우는 자리는 곧 시대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로마를 치유하는 여정을 결코 중단하지 않게 하시고, 영적인 병에 걸려 신음하는 시대를 복음으로 살리는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지금도 237개 나라에서 복음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5000종족이 복음을 모른 채 사단에게 붙잡혀 살아갑니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지금 우리 산업인 중직자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 237과 5000종족에 대한 가슴이 있게 하시고, 그들을 품을 기도와 헌신, 그리고 후대를 위한 전도운동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바울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외쳤듯이, 우리도 “나의 산업, 나의 삶, 나의 시간으로 로마를 보게 하옵소서”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이제 가이사 앞에 서야 합니다. 이 시대의 중심에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산업, 후대, 시간, 만남, 교회를 통해 이 사명이 성취되게 하시고, 우리가 있는 자리가 바로 보좌의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사도행전의 역사, 사도바울의 여정, 초대교회의 흐름이 오늘 이 시대, 이 땅 위에 다시 흐르게 하옵소서. 중직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의 여정을 붙잡고 나아갈 때, 모든 것은 살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중직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단순한 섬김과 봉사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를 살리고, 후대를 일으키며,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여정의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여정은 보좌의 힘을 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단순히 지식이나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좌의 능력이 임하고, 현장이 살아나고, 나 자신부터 치유되는 흐름이 시작됩니다.

보좌의 망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인 힘이 됩니다. 고된 일상과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 흔들리던 내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말씀 안에서 답을 보게 하십니다. 그 힘은 산업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경쟁과 무게, 피로와 유혹 속에서 ‘오직 복음’이라는 답을 붙잡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이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끄는 보좌의 대사로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 우리 중직자들이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눈을 들어 보좌의 뜻을 보게 하옵소서. 인간의 눈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보면 그 자리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는 산업 현장이 보좌의 여정이 되게 하시고, 그 여정 속에서 나의 산업이 증거가 되고, 나의 후대가 모델이 되며, 나의 교회가 시대의 치유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중직자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언약은 ‘모이기를 힘쓰라’는 명령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임은 단순한 집합이 아닙니다. 보좌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이며, 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회복의 현장입니다.

금요일의 기도, 토요일의 렘넌트 포럼, 주일의 말씀과 예배. 이 세 가지 모임이 단단히 연결되어 흐를 때, 교회는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산업인 중직자입니다. 산업이 복음화될 때, 지역이 회복되고, 교회가 힘을 얻게 되며, 후대가 방향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시대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주님, 산업인 중직자들이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언약의 흐름을 만드는 ‘영적 지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단 한 사람이라도 금토일의 흐름을 회복하고, 기도와 포럼과 말씀의 중심에 설 때, 시대의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단순히 무슨 일을 했느냐보다, 어떤 흐름 속에 있었는가가 중요한 줄 믿습니다.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오랜 여정과 고난, 핍박 속에서도 그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는 언약을 붙잡고 움직였습니다. 그 여정은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언제나 완벽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의 현장, 교회의 흐름, 렘넌트와의 만남,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여정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산업인 중직자는 다음 세대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TCK, 237나라, 5000종족. 이들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단지 선교사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산업의 문을 여는 중직자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업은 ‘현장의 교회’이며, 중직자는 ‘선교의 대사’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이 산업, 이 만남, 이 시간, 이 모든 것이 주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나를 통해 세계복음화가 시작되고, 나를 통해 후대가 준비되며, 나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단지 주일 성수가 아니라, 금요일의 기도, 토요일의 렘넌트 포럼, 주일의 예배가 연결되는 응답의 흐름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하게 하시고, 모든 사역과 사업, 관계와 만남이 보좌와 연결되어 움직이는 진짜 응답의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보좌의 이정표가 되고, 우리가 하는 일이 후대를 세우는 모델이 되며, 우리가 들이는 기도가 시대를 치유하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모이게 하셨사오니, 이 만남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 흐르고 기도가 깊어지고, 후대를 향한 응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중직자, 그 자리에 우리가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산업인 중직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복음화의 길이 열리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매일 기도하기로 결단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습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생명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절대계획에 나를 연결하는 가장 실제적인 응답의 통로입니다. 성경과 다락방 말씀에서 늘 강조하듯이,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고 끝맺는 흐름이 회복될 때, 우리는 내 힘이 아닌 성령의 인도를 실제로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너희는 잠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신 주님의 음성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매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시간표를 붙잡아야 합니다.

기도의 시작은 곧 영적 호흡의 회복입니다. 하루 중 가장 먼저 드리는 기도 속에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그 기도 안에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주어진 사건의 해석이 달라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복음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자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이 기도의 시작은 결국 세 가지 집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말씀 집중, 기도 집중, 전도 집중. 이 세 가지가 나의 삶의 흐름과 연결되지 않으면, 기도는 곧 의무가 되고 말씀이 흘러가지 않으며, 전도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집중하는 자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고, 기도에 집중하는 자는 성령의 능력을 입게 되며, 전도에 집중하는 자는 참된 응답의 열매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 앞에 나와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 스스로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도 되게 하옵소서. 나를 통해 말씀이 흐르고, 기도가 살아나며, 복음이 전달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이 세 가지 집중이 실제로 내 삶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세팅이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 중심의 시간표 세팅입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내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플랫폼 세팅입니다.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도 기도의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핸드폰은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연결은 잠시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전도의 발판 세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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