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약속이며, 예배는 그 약속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요한복음 8:43)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닙니다. 이는 복음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말씀입니다. 복음은 말씀이며, 말씀은 약속입니다. 그러나 듣는 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약속도 마음에 담기지 않고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14)
믿음은 듣는 데서 납니다.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하나님을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은혜로 시작되며,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 이어져 갑니다.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달아 믿을 수 있도록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백합니다. 복음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된 그 약속은, 인류의 타락 이후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창 3:15) 하신 그 첫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복음의 중심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도, 도덕 선생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시고, 죄를 대속하시며, 사단의 권세를 꺾으셨습니다. 이 예수가 바로 나의 구주,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이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흐르고 있습니다. 찬양도, 기도도, 설교도 그 중심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문제의 해답이시다"**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배는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그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그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하옵소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약속을 나의 것으로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롬 10:13). 그 이름을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은 곧 약속을 붙잡는 삶이며, 복음의 언약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입술로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권세 아래 순복하며, 그분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고백이며,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선, 반드시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로 향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고, 기도는 그 약속을 붙잡는 방법이며, 전도는 그 약속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오직 예수, 예수는 그리스도. 이 복음이 내 안에 깊이 새겨지고, 내 삶을 인도하며, 내 입술로 선포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서, 나는 약속을 붙잡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 언약을 가슴에 새기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게 하시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복음은 약속이다.
예배는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세 가지 고백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임을 믿고, 예배를 통해 그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약속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며, 주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예수는 그리스도!
📖 복음은 약속이며, 나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로마서 9장 8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장 15절)
나는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만족이나 자기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내 마음에 심으셨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을 내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시는 자는 육신의 조건이나 혈통, 그리고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오직 약속을 믿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복된 자이며,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자입니다.
율법을 따라 살던 구약의 시대, 사람들은 행위와 의식과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고,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내고, 안식일을 지키며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율법의 행위를 완전히 이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라고 말입니다. 그 약속은 단순한 말씀이나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영원한 구원의 계획이 담긴 복음입니다.
복음은 곧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하신 그 첫 번째 복음의 씨앗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언약으로 주어졌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동일한 약속으로 이어졌으며, 다윗에게는 "네 후손 중에서 왕이 날 것"이라는 메시아적 언약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이 모든 약속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의 말씀으로 선포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의를 완전하게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사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으며,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이것이 율법이 아닌 복음의 능력이며, 행위가 아닌 약속의 확실함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율법의 정죄 아래서 두려워하며, 율법의 요구를 내 힘과 노력으로 채우려 애쓰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약속을 내가 듣고, 믿고,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원리가 아닌 복음의 원리이며,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함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나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세상은 외모와 조건과 성취를 보고 아름다움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복음의 약속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참 아름답도다, 참 귀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며, 율법적 판단이 아닌 복음적 관점입니다.
나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나는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복음을 믿는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고백은 내가 내 감정이나 기분을 믿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약속의 자녀로 삼으신 확실한 언약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복음은 나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나는 더 이상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 있는 자가 아니며, 더 이상 세상의 조건과 환경에 흔들리고 좌절하는 자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복음을 받은 자이며, 동시에 그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로마서 10장 15절).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 정죄의 메시지가 아니라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제 나는 받은 은혜를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나의 가정에서, 나의 자녀들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복음의 약속과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정죄가 아닌 은혜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내가 받은 복음의 아름다움과 약속의 확실함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약속의 자녀로서 감당해야 할 특권입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 자격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통해 복음을 알게 되었으며,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복음을 믿는 자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나를 정죄하고 심판했지만, 복음은 나를 의롭다 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나를 죄 아래 얽매고 절망하게 했지만, 복음은 나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가 많은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만,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자격 없고 부족한 나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믿음까지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적 삶과 복음적 삶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내 정체성은 율법적 행위나 성취가 아니라, 복음의 약속과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나는 육신의 조건이나 혈통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내가 참 아름답고 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나의 발걸음도 하나님께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름답도다 네 믿음이여, 아름답도다 너의 발걸음이여, 아름답도다 네가 전하는 복음이여."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를 복음 안에서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부르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약속의 자녀로, 언약의 상속자로,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셨음을 믿습니다.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행위가 아닌 약속으로, 정죄가 아닌 은혜로 나를 사랑하시고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받은 이 아름다운 복음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소중한 자녀들에게, 만나는 모든 이웃들에게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마음이 통하고, 약속으로 사랑이 통하고, 언약으로 기도가 통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약속으로 힘을 얻게 하시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