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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속응답

coven21 2025. 12. 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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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한 사람은, 기도가 더 절실하다. 단순히 "하나님 고쳐주세요" 수준이 아니다. 뭔가 달라야 한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까지 무너진다. 생각도 삐뚤어지고, 일상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당연히 영적인 집중도 어렵다. 건강이 안 좋다면, 더더욱 자신의 상태에 맞는 기도 제목을 따로 정리해둬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치밀하게 기도해야 한다. 삶이 무너질 때, 기도로 다시 세워야 한다. 내 인생의 설계도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그 위에 다시 새기듯 기도하는 것이다.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도.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역사하시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그런 기도.

 

렘넌트의 기도. 이유는 단순하다.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성적 잘 받고 좋은 대학 가는 수준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서밋의 시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는 삶. 그래서 렘넌트에게는 ‘서밋타임’이 필수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세상과 나를 끊고, 하나님과의 연결을 회복하는 시간. 이게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방향을 잃는다. 집중력을 잃고, 결국엔 혼란 속에 빠진다. 하지만 서밋타임이 살아 있으면,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렘넌트다.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세상을 이기는 자.

 

 

성경 속 7명의 렘넌트는 단순히 '기도했다'는 공통점이 아니다. 그들의 기도는 달랐다. 환경을 이기는 기도. 모든 것을 초월하는 기도. 현장에서 누리는 기도였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기도. 흔히 말하는 '정해진 시간의 기도'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기도였다. 우리가 오늘 붙잡아야 할 기도는 바로 이거다. 777 기도. 하루 세 번, 하나님의 언약을 집중해서 붙잡는 시간. 아무리 바빠도, 이 세 번의 기도를 놓치지 않으면, 방향을

잃지 않는다.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세 번의 기도는, 점점 하루 전체를 덮는다. 결국, 매 순간이 기도가 되고, 매 호흡이 언약을 담게 된다.

 

“매시 확인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이 기도가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묵상해보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린다. 누가 한 마디만 해도 기분이 다운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일상이 무너진다. 그러니 매 시간마다 확인하는 은혜가 필요하다. 단순히 말씀 한 구절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시는 말씀을 붙잡는 것. 매사에 300%로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기도를 회복하는 것. 이건 단순한 창의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기도로 설계된 삶은 다르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에서 편집된 인생. 그게 진짜 기도응답이다.

 

기도의 본질은 ‘오직’을 발견하는 데 있다. 세상은 늘 여러 가지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오직 한 방향이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이 오직을 붙잡을 때, 유일성이 보인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유일한 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재창조가 시작된다. 완전히 새로워지는 삶. 남들이 이미 포기한 그 영역에서, 다시 시작하는 힘. 창세기 45장 1절에서 5절, 요셉은 결국 총리가 된다. 이건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재창조의 기회로 바꾸셨다. 그걸 기도로 붙잡은 사람만이 진짜 렘넌트다.

 

모세의 10가지 기적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이 아니다. 그 기적 하나하나가 메시지였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였고, 애굽의 모든 문화를 깨뜨리는 선언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같은 기적이 필요하다. 세상의 틀을 깨뜨리는 능력. 그리고 그 기적은 기도에서 시작된다. 공부하면서도, 일하면서도, 예배드리면서도, 한쪽 귀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가 왔을 때 ‘당황’이 아니라 ‘대응’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힘. 그 힘은 기도에서 온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듯 기도하자. 죄를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호흡. 단순히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살리는 기도. 렘넌트의 기도는 무게가 다르다. 그 기도 하나에 현장이 바뀌고, 그 기도 하나에 인생이 바뀐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문은 이미 열려 있다. 문제는 그 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기도할 때에만 보이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타는 사람이 결국 시대를 움직인다. 그래서 미스바운동, 도단성 운동, 바벨론 운동, 로마운동처럼, 기도에서 시작된 영적 운동은 결국 역사를 바꿨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민족을 살리신다. 그 기도의 응답은 단순히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응답은 ‘영원한 지속’이다. 오늘 내가 드리는 기도가, 10년 후, 100년 후에도 역사하는 응답. 그래서 237개 나라와 5000종족을 살리는 기도는, 단순한 미션이 아니다. 존재의 이유다.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기준이다. 단순히 ‘기도 잘해야지’가 아니라, 반드시 기도해서 응답받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렘넌트의 정체성이다.

 

기도의 흐름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성막의 세 가지 뜰, 금토일의 집중 시대, 묵상으로 살아나는 말씀의 시대.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완전히 새로운 영적 시스템이 세워진다. 중요한 건, 복음운동이 왜 사라졌는가? 흐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망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되는 망대가 다시 세워져야 한다. 단순히 예배드리고 끝나는 삶이 아니라, 매일의 여정이 보좌와 연결되는 삶. 그런 렘넌트가 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보좌의 여정을 걷는 자’다.

 

 

응답의 기준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해결되면 응답’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문제 속에서도 말씀 붙잡고 평안하면 그게 응답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응답이다. 남은 자, 남을 자, 남길 자, 남는 자. 렘넌트는 결국 이 네 가지 여정을 통과한다. 그리고 반드시 300%의 응답으로 승리하게 된다.

우리는 순례자이며, 정복자다. 이 절대 여정을 걷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흩어진 자도 있고, 상처받은 자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파수꾼의 눈을 떠야 한다. 재앙지대를 살리는 정탐꾼이 되어야 한다. 대로를 준비하고, 만민을 위해 기를 드는 제자. 그런 제자가 시대를 움직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시작이 되라.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이제는 정확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자. 오늘부터 다시 기도로 시작하자. 기도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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