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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ginning of "Eternal Response"

coven21 2025. 12. 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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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의 시작을 주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명이 드러나고 영원한 응답의 문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300% 응답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고, 풍성하게 일하신다. 사랑하는 자녀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뻐하신다 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다. 인간의 수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축복,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영혼이 살아야 인생이 산다. 영혼이 회복되면 생각이 달라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삶의 모든 영역이 제자리를 찾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과 다르게 일하신다. 그래서 응답은 항상 예기치 않은 시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포기하려는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문을 여신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눈앞의 현실보다 말씀을 붙잡는다.

 

 

히브리서 7장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하여 더 좋은 언약 위에 서 계신 분이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주님은 언약의 자리에 서 계신다. 그래서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상황보다 약속을 붙잡는다.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더 좋은 응답’을 주신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인생이 그랬다. 그들은 로마에 살던 부부였다. 하지만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유대인이 로마에서 추방당하자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들은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갔고, 세상적으로는 실패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바울을 만났다. 그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복음의 역사를 함께 세워갔다. 삶의 위기가 오히려 사명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300% 응답이다. 인간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완벽한 시간표였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더 깊은 축복의 문을 여신다.

 

 

응답은 언제나 교회를 통해 흐른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응답의 터전이다. 초대교회를 보라.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 15개 나라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각 나라의 언어로 복음이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말씀이 통하고, 영이 통하고, 생명이 통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가진 본질이다.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흘러가시는 통로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역시 이 은혜의 흐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나그네였지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어갔다. 성령이 불같이, 바람같이 역사하던 그 자리에 그들은 있었다. 그들의 인생은 어느새 복음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 안에서 모든 응답이 시작되었다. 은혜의 흐름 속에 들어간 사람은 어느 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어찌된 일이냐. 내가 어쩌다가 이런 축복을 받게 되었는가.”

 

 

고린도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 밖에 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믿을 수 없는 통로를 통해 주어진다. 복음의 흐름 속에 들어간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지만, 복음의 사람은 응답의 흐름을 만든다. 세상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복음이 흘러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 언약에서부터 출애굽기 3장 18절의 제사 언약, 사무엘상의 나실인 축복, 임마누엘의 언약까지, 하나님은 한 줄기의 흐름으로 복음을 이어오셨다. 로마서 1장 16절은 말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마른 뼈가 살아나고, 생기가 불어오며, 죽은 것들이 다시 일어난다. 복음의 흐름 안에 있을 때,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주님, 나의 복음의 흐름이 시작되게 하소서.
내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되고,
나의 인생이 주님의 흐름 안에서 영원응답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응답하신다. 만남의 축복이 바로 그 통로이다.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듯, 우리에게도 믿음의 친구와 말씀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셨다. 기도가 통하고, 말씀이 통하고, 영이 통하는 관계, 서로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만남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교회 안에서의 만남, 사명 안에서의 만남은 모두 하나님이 예비하신 시간표다. 결국 응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을 때 완성된다.

 

영원응답은 나 하나의 축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로 인해 교회가 살아나고, 가정이 회복되며, 복음이 세상으로 흘러간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시대를 변화시키신다. 그 시작이 바로 기도의 자리이며, 말씀의 자리이고, 복음의 흐름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세상적으로는 실패자였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성공자였다. 그들의 인생이 300% 응답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언약을 붙잡을 때 완전히 새로워진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인생. 이것이 하나님의 기본 응답이다. 오늘도 그 흐름 속에서 말씀의 강물이 흐르고, 기도의 강물이 흐르고, 복음의 강물이 흘러가게 하소서. 그곳이 바로 영원응답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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