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속에 응답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고, 묵상해도 마음에 감동이 없으며, 모든 상황이 멈춘 듯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순간. 마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응답이 없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고 정밀한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무응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최고의 응답이 숨어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진짜 응답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피상적인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응답의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무응답은 오해로 남고, 결국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응답은 단지 기도 제목이 성취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응답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고, 그것을 실제로 누리는 삶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의 정체성을 바르게 알고, 그에 합당한 권세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이다. 신분을 누리면 흔들리지 않는다. 환경이 나를 흔들 수 없고,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확신이 서게 된다. 이것이 진짜 응답을 누리는 삶이다.
또한, 응답이 없는 듯한 시간은 하나님이 중요한 것을 회복하라고 주시는 신호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외적인 축복이나 성취를 멈추고, 우리 내면을 점검하게 하신다.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영적 망대는 무엇인가? 당신은 하나님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는가? 인생의 이정표는 제대로 정해져 있는가?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시기일수록, 오히려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고 계시는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하나님은 지금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이 모든 질문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응답이 없는 시간’이 아니라 ‘응답이 준비되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정밀하게 일하신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손을 놓지 않으신다. 오히려 무응답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하나님의 ‘마지막 미션’이 진행되는 시간일 수 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예들로 가득 차 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해 노예로 팔리고, 억울한 누명까지 써서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는다. 누가 봐도 무응답이고 실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감옥에서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총리가 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 감옥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위한 통로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그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세는 왕궁에서 나와 40년을 광야에서 보내며 양을 치는 인생을 살게 된다. 한때는 민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열정을 품었지만, 이제는 낙오자가 된 삶이었다. 하지만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다. 바로 그 시간표는 전 세계에 복음을 알리는 ‘피의 제사’가 시작되는 시간표였다. 광야의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할 자로 준비되는 시간이었다.
다윗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수많은 위기와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훈련시키고, 결국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다. 그에게 상을 차려주시고, 그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르게 하셨다. 어쩌면 다윗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하나님이 가장 크신 계획을 준비하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에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청한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음 사명을 주셨고, 엘리사라는 후계자를 세워 또 다른 언약의 여정을 준비하신다. 사람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시작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오히려 그때 역사하신다.
이 모든 사건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의 무능은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시간표라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의 전능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내가 할 수 없을 때가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실 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 오히려 언약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배경이 부족하고 아무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두셨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그 언약을 붙잡고, 기다리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보는 눈’이다. 응답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세 가지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첫째, 절대 불가능.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다. 둘째,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 하나님은 절대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 절대 계획을 이루신다. 셋째, 결국은 절대 가능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절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요게벳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애굽에서는 히브리인의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요게벳은 그 명령 아래서 아기를 낳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요게벳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다. 갈대 상자에 아기를 넣어 나일강에 띄우고, 결국 그 아이는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왕궁에서 자라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모세다. 하나님은 절대 불가능의 순간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셨다.
이처럼 무응답의 시간은 하나님의 응답이 가장 치밀하게 준비되는 시간이다. 당신이 지금 아무 응답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에 ‘무엇을 보고 있느냐’이다. 사람을 보고 있는가? 환경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고 있는가?
기도할 제목은 명확하다. “하나님, 지금 이 무응답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소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연약한 존재다. 하지만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것을 보게 된다. 무응답은 응답이 멈춘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응답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시간’이다. 뿌리는 시기에는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뿌리를 통해 반드시 열매를 준비하고 계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선이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바라보는 시선. 절대 불가능 속에서 절대 가능을 보는 시선. 그리고 응답이 없는 듯한 시간에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최고의 것을 기대하는 시선. 이 시선이 열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당신이 할 수 없을 때,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이 시작된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언약을 붙잡아라. 응답은 반드시 온다. 아니, 이미 오고 있다.